나의 육아 일기 8

다시 119

오랜만에 응급실을 또 오게되었습니다. 퇴원한지 한달만에 또 병원이네요. 요붕증이 있어서 소변양 조절이 힘들다보니 하루 권장 수분양을 잘 챙겨먹어도 탈수가 자주 생깁니다. 탈수로 시작해서 패혈증으로 넘어가는 순서로 응급실을 수없이 왔습니다. 이번에도 슬슬 안좋아지는 증상이 나타나서 미리 119를 불러서 어제 낮에 병원에 왔습니다. 병원에서는 매번 입원해도 매번 같은말을 반복하게 만들고 처치는 안하고 한참 기다려야하고 자주 봐주지도않습니다. 물론 응급실이니까 환자도 많고 중등도 분류에 의해서 순서가 정해지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우리 아이가 어렵고 까다로운 아이인 이유도 있겠지요. 이럴때는 기분도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이럴때 일수록 아이 앞에서 웃어주고 너는 잘 할수있다 이겨낼수있어..

물리치료

아이가 강직때문에 힘을 줬다 풀었다 하기 때문에 근육에 근긴장도가 높은 상태였습니다.외부에서 만지는 행동이 우리아이에게는 자극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예쁘다고 만져도 그에 대한 반응은 강직으로 나옵니다. 여러번 만지다 보니 알게 된건데 우리 아이는 부드럽게 또는 가볍게 만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일반적으로 가볍게 만지면 간지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 간지러움이 아이에게는 또다른 자극인 것이었죠. 그래서 약간 힘을줘서 압력을 주며 만져야 아이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느끼지만 의식이 없는 아이임에도아빠엄마가 만지는 손길과 다른 사람이 만지는 손길을 구별하는게 신기했습니다. 하여튼 근긴장도가 높고 강직이 있기 때문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을때부터 소아물리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물론 퇴원해..

외래 진료 - 1

집에 온 후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서 정말 다행이었고, 집에서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습니다.평소 먹이고, 기저귀 교체하는 기본적인 것은 잘 해결했지만 외래 진료가 문제였죠. 애 한명을 병원으로 옮길려면 두사람이 필요했으므로, 저는 애기 진료가 있는 날이면 휴가를 써야했습니다.회사가 한참 바쁠때는 눈치도 많이 보였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저희집 애기가 아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를해주셨습니다. 보통 피검사 X-ray 검사등의 검사가 있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집에서 한두시간전에 병원에 도착해야했습니다.그럼 이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며 준비를 해야했죠. 백팩에다가 밖에 나가서도 애기를 케어할 수 있는 비상용품을 다 넣었고, 이동식 석션기, 산소통(이때는 마음이 불안해서 산소..

퇴원

기관절개술 수술을 받고 다시 신생아 중환자실로 왔습니다.아이는 집에가기 위한 준비 운동으로 홈벤트를 사용하여 몸이 홈벤트에 적응하도록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황달도 남아 있었고, 부모가 보기에는 집에 간다는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퇴원날을 받아놓고 너무 기대되고 설레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까지 되었습니다. 아이를 임심했을때부터 아이를 위해 보통의 부모들이 준비하듯이 여러 물건을 준비했었지만, 우리 아이는 다른쪽으로 준비가 필요했지요.각종 의료용품이었습니다. 석션기, 주사기, 환자용 모니터등 비용이 엄청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집에 올 수 있다는데 비용이 문제겠습니까. 퇴원날 간호사분들의 주의사항을 듣고 퇴원약과 추울까봐 이불을 많이 덮어서태어난지 6개월만에 집에 갈 수 ..

결정의 시기

3개월쯤 되자 아이의 상태가 어느정도 안정된 상태가 되어갔습니다.스스로 자가호흡이 힘들기 때문에 퇴원은 힘들었지요. 그리고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이렇게 오래 있는 아이는 잘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호흡을 유도하기 위해 입으로 불어넣던 공기를 코로 넣는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아이가 완전히 스스로 숨을 못쉬는것은 아니고 10번에 3~4번 정도씩 스스로 호흡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기대를 한 것이죠. 그렇게 몇일이 지나자 아이는 갑자기 강직을 심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부터 작게 강직이 있었지만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습니다.그래서 시도하던것도 포기하고 다시 이전처럼 입으로 공기를 넣는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는 긴 시간 강직으로 힘들어했고, 강직이 멈추었을때 그 이전에 있던 움직임이나 눈빛이..

고통 그리고 희망

아이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있게 되었고, 오전 1번, 오후 1번의 면회를 왔다갔다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아이엄마는 우울증이와서 감정기복이 커져서 항상 우울하고 슬퍼했고, 저는 애써 슬픔을 억누르고 회사로 출근해야했습니다. 평일 오전 면회는 항상 아이엄마 혼자 가게 되었고, 퇴근 후에는 같이 가 볼 수 있었는데초반에는 아이의 신체 전반적으로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우리는 매일이 불안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면회 할때는 잠깐 기분이 좋았다가 끝나고 나오면 또 기분이 우울해 지는 반복... 나는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모든 가족들은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가족끼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때의 우리 부부는 그런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다만 위로가 되는것..

아기와 처음 만난 날

2012년 겨울 애기엄마는 출산예정일을 두달 남겨두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배가 배가 뭉쳐서 그런가보다 했지요. 자주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배가아프다고하여, 병원을 급하게 갔습니다. 응급실을 갔다가 몇가지 검사를 한 후 바로 분만실로 이동했습니다. 이때까지도 큰일 아니겠지 하고 있다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상황을 보고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였지요.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분만실 앞에서 기다리니까. 한참 뒤 아기가 수술복 입은 두명과 함께 나왔는데. Ambubag 즉 수동식인공호흡기로 아이에게 공기를 넣고 있었죠. 그때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 아이 상태가 그렇게 위중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따라 소아중환자실로 가서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의..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

안녕하세요.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우리나라에서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은 힘들죠. 세상의 시선, 장애로 부터 오는 아이의 고통, 아이를 돌보는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등많은 힘들 것들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이죠. 하지만 힘든 반면 내 아이의 사랑스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힘든것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보람도 있지요. 장애아를 키우게 되면 단기간에 치료가 완료 되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마치 마라톤을 뛰는 것 처럼 부모와 아이 모두 지속적으로 힘들죠.그래서 주변에 들려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준비없이 이렇게 힘든 일에 마주하게 되어서 그런거겠죠.얼마전에 알게 된 한 아이의 아버지께서도 아이를 잘 돌보고 싶지만 아는 것이 적어서 어떻게 해줘야..